『존재의 세 가지 거짓말』 은 아고타 크리스토프가 오 년여에 걸쳐 쓴 소설들을 묶은 책이다.
작가 아고타 크리스토프는 1936년에 헝가리의 시골 마을에서 태어나서 제 2차 세계대전에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작가는 자신이 사랑했던 오빠를 클라우스로, 작가 자신을 루카스로 등장시켰다고 한다.

1부 『비밀 노트』 에서는 고유명사가 일체 나오지 않고 주인공을 복수(우리)로 한다.
쌍둥이는 최악의 상황을 이겨나가는 연습을 하고, 사회의 도덕기준에 얽매이지 않고 자신들만의 기준을 새로 만든다. 그들은 커다란 노트에 자신들의 성장과정과 죄악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해나간다. 쌍둥이 중 한명인 클라우스는 국경을 넘어가고, 나머지인 루카스는 그대로 할머니집에 남게 되면서 1부가 마무리 된다. 쌍둥이의 이별은 둘로 분화된 그들이 극복해야 할 아이덴티티의 회복과 상실을 동시에 의미한다.

반면 2부 『타인의 증거』 에서는 주인공 루카스를 비롯해서 등장인물 모두가 이름을 가지게 된다. 2부는 클라우스가 국경을 넘어간 뒤 혼자 할머니 집에 남은 루카스의 이야기이다. 2부에서는 여러 등장인물이 등장하는데 각각 모두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있다. 아버지의 아이를 낳고 방황하는 소녀, 출생의 비밀을 모르는 영리하지만 불구인 소년, 작가의 꿈을 좇으며 알코올 중독자의 삶을 사는 서점 주인, 미남이고 지적이지만 소심한 동성애자인 공산당 간부, 사회체제의 희생양이 된 늙은 불면증 환자의 이야기가 짧게 전개된다.
개인적으로 2부에서 마티아스의 이야기가 정말 슬펐다. 아이는 어미에게 버림받았다고 생각하며 루카스에게 절박하게 매달린다. 루카스 또한 형제와의 이별이 슬픔을 넘어서 고통스럽게 느끼지만, 야스민과 마티아스를 돌보며 다시 삶의 의미를 찾아간다. 하지만 마티아스는 절망감을 이기지 못하고 해골들 옆에 목을 매달아 자살한다. 불면증 환자가 평소와 다른 마티아스의 모습을 언질해주고 루카스는 마티아스의 시체를 발견한다.

루카스는 계단을 올라가서 자기 방에 들렀다가 아이의 방으로 갔다. 창가에는 종이들이 탄 재가 담긴 양동이가 있고, 아이의 침대는 비어 있다. 베개 위에는 푸른색 노트가 덮인 채 놓여 있다. 제목란에는 “마티아스의 노트”라고 적혀 있다. 루카스가 노트를 펼쳤다. 백지뿐이고 찢어낸 흔적이 있다. 루카스는 자줏빛 커튼을 젖혔다. 엄마와 아기의 해골 옆에, 마티아스의 시체가 매달려 있다. 시체는 벌써 푸르스름하게 변하고 있다.
불면증 환자는 길게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그는 거리로 내려와서 루카스의 집 초인종을 눌렀다. 대답이 없다. 그 노인을 계단을 올라가서 루카스의 방으로 들어갔다. 또 하나의 문이 눈에 띄어서, 문을 열었다. 루카스가 침대 위에서 아이의 시체를 가슴에 끌어안고 누워 있다.

- 2부, 7장 -


3부 『50년간의 고독』 에서 쌍둥이는 어렵게 다시 만나게 되지만 클라우스는 루카스의 존재를 단호하게 부정한다. 짧은 만남과 헤어짐 끝에 루카스는 기차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이 소식을 들은 클라우스는 자신도 루카스와 꼭 같은 방법으로 죽을 것이라는 걸 예감한다.
1,2부의 내용이 3부에서 모두 부정되는 게 충격적이었다. 번갈아가면서 쌍둥이의 시점에서 묘사되는 이야기를 보면서 앞 부분의 불쾌감이 해소었는데, 비슷한 듯 전혀 다른 그들의 인생이 비극적으로 느껴졌다.


작가는 이 소설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소설은 자전적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나는 나의 어린 시절을 이야기하고 싶어서 이 글을 쓰기 시작했다. ... 이 소설에서 기술하고자 했던 것은 이별(조국과, 모국어와, 자신의 어린 시절과의 이별)의 아픔이다. 나는 가끔 헝가리에 가지만, 어린 시절의 낯익은 포근함은 찾아볼 수가 없다. 어린 시절의 고향은 세상 어느 곳에도 없다는 느낌이 든다.”




후기


루카스와 클라우스의 경우에는 한 평생을 같이 한 괴로움을 떨치지 못한 채 삶을 마무리한다.
한 권의 책을 집필하는 게 꿈이었던 알콜중독자 서점 주인은 결국 누나를 살해한다.
마티아스는 사회의 질책과 동급생들의 따돌림에도 꿋꿋하게 학교를 다니지만, 자기 혐오와 열등감에 삶을 마무리한다.
언청이는 엄마를 위해 구걸을 하고 가축들을 키우려 노력하지만 강간당하고 살해된다.
이 책의 등장인물들에게 희망은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책을 완독한 후, 이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나에게 상상할 수 조차 없는 큰 절망이 닥치면, 나는 어떻게 이겨내야 할까?
당장 떠오르는 방법은 ‘포기하기’이다. 개인이 받아들일 수 있는 고통의 크기는 제한적이다. 내 안의 한계를 넘어서는 고통을 갑작스럽게 마주한다면, 손 쓸 새도 없이 항복을 외치고 포기하게 된다. 하지만 이래서는 소설 속의 인물들과 다를 게 없다.
따라서 나는 고통을 ‘수용’하고 ‘극복’하기 위해서는 자기 나름대로의 삶의 의미를 찾아야만 한다는 결론을 냈다.
식물을 키우고, 주변인을 챙기고, 기타 생산적인 활동에 열중하는 동시에, 슬픔을 외면하지 말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지 않을까...
20대 초반의 나는 이런 결론을 냈는데 훗날의 내가 또 다른 방법을 찾을 수 있으면 좋겠다.

+) 괴테의 『파우스트』 가 떠오른다. 파우스트 역시 여러 방면에서 좌절하지만, 삶의 진정한 행복을 느끼고 신에게 구원받는다. 두 작품은 비슷한 주제를 다룬다고 생각하지만 그걸 풀어내는 방식이 완전히 다르다. 비교해서 다시 읽으면 좋을 듯.


인상깊었던 구절

나는 이제 깨달았네, 루카스, 모든 인간은 한 권의 책을 쓰기 위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걸, 그 외에는 아무것도 없다는 걸. 독창적인 책이건, 보잘것없는 책이건, 그야 무슨 상관이 있겠어. 하지만 아무것도 쓰지 않는 사람은 영원히 잊혀질 걸세. 그런 사람은 이 세상을 흔적도 없이 스쳐지나갈 뿐이네.

- 2부 4장 -

“그런데 루카스. 넌, 아그네스의 동생을 사랑해. 난 세 사람이 부엌에 들어올 때 저들이 바로 진짜 한 가족이구나 하는 걸 느꼈어. 부모가 금발이고 잘생겼으면, 아이도 당연히 금발이고 잘생겨야 하니까. 그런데 난, 난 가족이 없어. 난 엄마도 아빠도 없어, 난 금발도 아니고, 못생기고, 불구야.”    
루카스는 아이를 끌어안았다.    
“마티아스, 넌 사랑스런 아이야. 너는 내 인생의 전부야.”    
마티아스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좋아, 먹으러 가.”

- 2부 7장 -

소년은 조서에 서명을 했다. 거기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적혀 있었다.
국경을 같이 넘은 남자는 그의 아버지가 아니었다.
이 소년은 열여덟 살이 아니고, 열다섯 살이다.
이름은 클라우스(Claus) 가 아니다.

- 3부 -

나는 매일 묘지에 간다. 나는 Claus라는 이름이 새겨진 십자가를 바라보며 Lucas라는이름이 새겨진 다른 십자가로 대체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한다.
나는 또한 우리 네 사람이 곧 다시 만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어머니만 돌아가시면, 나는 더 이상 살아야 할 이유가 없다.
기차, 그래, 그건 좋은 생각이다.

- 3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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