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일인칭 단수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을 처음 접한 건 중학생 때 1Q84를 읽었을 때이다.
평행세계의 두 남녀에게 일어나는 미스터리한 사건들이 정말 재미있어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던 기억이 난다.
그 후, 고등학생 때 좋아하는 국어선생님께 책을 선물 받을 기회가 있었다.
무슨 책을 갖고싶냐는 물음에 주저 없이 하루키의 책을 골랐다, 한없이 투명에 가까운 블루.
1Q84와는 달리 직관적이지 않은 문체가 가독성을 떨어트렸다.
한참에 걸려 완독을 했는데도 뭐가 뭔지 모르겠다는 감상평이 나왔다.
그 다음 읽은 하루키 소설은 해변의 카프카였다.
읽은 당시에는 카프카에게 상당히 공감이 간다고 생각했는데 어쩐지 상,하권 둘 다 읽지는 않았다. 시간적 여유가 없어서였을까?
성인이 돼서 처음 읽어 본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은, 청소년 때 읽었을 때와 느낌이 많이 달랐다.단순하지 않고 깊이 숨어있는 작가의 외침을 이제는 들을 수 있다.그의 신간 일인칭 단수는 언뜻 읽으면 어젯밤 꾼 꿈을 두서없이 늘여놓았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단편 하나하나가 따뜻한 온도로 독자에게 공감해주고 위로해준다고 느꼈다.
제일 기억에 남은 장은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이다.
[시나가와 원숭이의 고백]
주인공은 여행을 하다가 낡은 료칸에 하룻밤 묵게 된다.
늙은 주인, 늙은 고양이, 모든 것이 오래된 그 곳에서 말하는 원숭이를 만난 주인공은 그의 살아온 이야기를 듣기로 한다.
자신이 원숭이라는 이유로 인간을 사랑하면 안되는 처지에 있는 그는, 소소한 짝사랑을 한다.
차마 말 한마디 걸지 못하고, 한 때 연모했던 사람들의 이름을 품으며 남은 인생을 근근이 살아갈 뿐이다.
평생 짝사랑할 수 밖에 없는 인생에서 본인만의 의미를 찾아낸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을 텐데, 덤덤하게 받아들이는 시나가와 원숭이의 태도가 정말 멋있었다.
나는 원숭이가 느낀 절망이 사회적 편견의 결과라고 해석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변하지 않는 현실에 절망을 느낀다면, 원숭이처럼 나름대로의 돌파구를 찾아야겠다고 생각한다.
"제가 생각하기에, 사랑이란 우리가 이렇게 계속 살아가기 위해 빼놓을 수 없는 연료입니다. 그 사랑은 언젠가 끝날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결실을 맺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설령 사랑이 사라져도, 사랑을 이루지 못한다 해도,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 연모했다는기억은 변함없이 간직할 수 있습니다. ... 한 때 연모했던 아름다운 일곱 명의 여자 이름을 소중히 품고 있습니다. 저는 이것을 저 나름의 소소한 연료삼아, 추운 밤이면 근근이 몸을 덥히면서, 남은 인생을 그럭저럭 살압볼 생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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